Journal > press

아트큐브 2R2,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49점으로 묻는 ‘회화의 질서’

by 아트코리아방송

Feb 19, 2026

thumbnail

회화는 이미지가 아니라 경험이다… 서울의 전시장에서 독일 라이프치히가 호출된다. 아트큐브 2R2가 2월 26일부터 4월 17일까지 선보이는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개인전은 ‘신 라이프치히 화파’라는 이름으로 묶여 온 동시대 독일 회화의 한 축을, 장르적 수사나 유행의 표정이 아니라 ‘회화의 문법’ 자체로 다시 읽게 만든다. 전시의 핵심은 간단하다. 점·선·면·색, 회화의 가장 기본 단위들이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다시 조직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조직이 결국 관람자의 몸과 감각에 어떤 방식으로 도달하는가. 신 라이프치히 화파는 종종 ‘회화의 귀환’이라는 말과 함께 언급되곤 했다. 사진과 영상, 설치가 미술의 중심 언어가 되던 시기에, 라이프치히 예술학교(HGB Leipzig) 출신 작가들이 회화의 지속 가능성을 다시 증명했다는 서사 때문이다. 하지만 루크헤베를레를 그 서사 속에만 가두면 오히려 중요한 지점이 빠진다. 그의 작품은 회화가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더 집요하다. 이미지의 의미나 내러티브보다, 화면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가 관람자의 시선을 움직이게 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감지되는 것은 직선적 추상과 강렬한 색채가 만드는 긴장이다. 화면은 기하학적 구획으로 분절되고, 패턴은 반복되며, 서로 다른 요소들이 병치된다. 그런데 이 질서는 차갑게 닫혀 있지 않다. 반복과 중첩이 일정한 리듬을 만들면서, 시선은 한 지점에 고정되지 않고 이동을 강요받는다. 보는 행위가 ‘읽기’가 아니라 ‘걷기’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작품을 정면에서만 감상하는 관습은 여기서 무력해진다. 화면 안에서 구성된 구조가 공간적 감각을 호출하고, 관람자는 작품 앞에서 미세하게 위치를 바꾸며 관계를 갱신하게 된다. 회화가 평면에 머무르지 않고 감각의 장으로 확장되는 지점이 이 전시의 설득력이다. 루크헤베를레가 흥미로운 이유는 ‘장식성’과 ‘구조성’을 대립시키지 않는 태도에 있다. 장식은 종종 깊이 없는 표면으로 치부되거나, 반대로 매혹의 장치로만 소비된다. 그러나 그의 화면에서 장식적 리듬은 구조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구조를 관람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된다. 즉, 장식성은 내용이 아니라 전달 방식이며, 기하학은 차가운 도식이 아니라 감각을 조직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회화의 기본 요소를 출발점으로 삼되, 그것을 회화 내부의 문제로만 끝내지 않고 ‘감상 경험’으로 넘겨주는 방식이 명확하다. 이 전시가 국내에서 의미를 갖는 지점은 또 있다. 아트큐브 2R2를 운영하는 아트토큰의 전시 전략이 “해외 주요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국내 작가들이 국제 담론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향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이 현실이 되려면 조건이 있다. 단지 해외 작가를 초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 관객과 작가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만드는 큐레이션이 필요하다. 루크헤베를레 전시는 그 가능성을 ‘형식의 질문’으로 연다. 회화를 다시 묻는 방식, 이미지와 공간과 관람자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방식, 그리고 반복과 수행이 어떻게 화면의 감각을 바꾸는지에 대한 질문은 한국 동시대 회화의 고민과도 정면으로 닿아 있다. 홍지숙 대표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회화의 기본 요소가 어떻게 이미지의 한계를 넘어 공간과 감각 속으로 확장되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확장”을 거창한 기술이나 설치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매체인 회화의 내부 논리로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새로움’의 과시가 아니라 ‘기본의 재조립’에 가깝다. 동시대 미술이 빠르게 바뀌는 듯 보여도, 결국 오래 남는 것은 기본을 다시 묻는 작업들이다. 이 전시는 그 사실을 정면으로 확인시킨다. 한편 B1층과 6층에서는 갤러리 소장전이 예약제로 함께 운영된다. 작가 개인전이 던지는 ‘회화의 질문’과, 소장전이 제시하는 ‘작품의 축적’이 같은 공간에서 병렬될 때 관람자는 한 가지를 더 보게 된다. 전시는 사건이지만, 컬렉션은 시간이다. 지금 이 장소에서 회화의 질서가 어떻게 구축되고 축적되는지, 전시와 소장의 두 방식이 함께 보여주는 구조를 읽어보는 것도 관람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전시 정보 전시명: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개인전 기간: 2026년 2월 26일 – 4월 17일 장소: 아트큐브 2R2 구성: 회화, 판화, 조형적 실험 등 49점 부대: B1층 및 6층 소장전(예약제) 병행 운영